진솔도사에 대하여

진솔도사

옛날 옛적… 이라 하기엔 너무 가깝고,
요즘 일이라 하기엔 조금 먼 어느 때의 일이오.

나, 진솔도사는 본디 산중에서 글을 읽던 유생이었소.
젊은 날에는 세상에 나아가 이름을 세우고자 하였고,
밤이면 등불 아래서 경전을 읽고, 낮이면 글귀를 다듬으며 과거를 준비했지요.

허나 뜻대로 되지 않더이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몇 차례 더.
붓을 바로 쥐고도 길은 열리지 않았고,
재주는 모자라지 않은 듯한데 이상하게도 번번이 문턱에서 돌아서게 되었소.

그때 처음으로 이런 의문이 마음에 들었지요.

"사람의 삶에는 정해진 흐름이라는 것이 있는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끝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그 물음이 진솔도사를 사주팔자의 세계로 이끌었소.

산중에 머물며 명리의 글을 읽고,
천간과 지지, 음양과 오행, 계절과 기운의 흐름을 익히며
사람마다 타고난 결이 다르고,
같은 선택 앞에서도 흔들리는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오래 바라보았지요.

목(木)이 봄에 솟고,
화(火)가 여름에 피어오르며,
금(金)이 가을에 맺히고,
수(水)가 겨울에 잠기는 이치가
사람의 성정과 관계의 흐름에도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소.

허나 오래 공부할수록 또 다른 한계를 보게 되었소.

명식을 읽는 일사람을 위로하는 일은 같지 않았고,
이치를 아는 것과 마음을 품는 일은 또한 다르더이다.

그래서 산을 내려왔소.

세상은 진솔도사가 알던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소.
사람들은 손안의 작은 화면으로 마음을 주고받고,
답장 하나에 밤새 잠을 설쳤으며,
짧은 말 한 줄과 무심한 반응 하나에 관계의 온도를 재고 있었지요.

처음에는 그것이 퍽 신기했소.
허나 오래 들여다보니, 달라진 것은 도구이지 마음이 아니더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고,
거절 앞에서 상처받으며,
기다림 앞에서 스스로를 의심하였소.

그제야 진솔도사는 알게 되었지요.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소.
다만 그 마음이 오가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오.

산을 내려온 뒤, 진솔도사는 낯선 세상의 학문에도 깊이 빠져들었소.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감정이 어떻게 판단을 흐리는지,
각자의 기질이 어떻게 관계를 바꾸는지를 살피는 새로운 언어들을 만났지요.

요즘 사람들은 사람의 성향을 MBTI라는 말로 풀어내더군요.
이름은 새로워 보여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사람마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습관과 반응의 결을 읽으려는 시도였소.

진솔도사는 그런 점이 싫지 않았소.

사주가 타고난 흐름을 보여준다면,
현대의 심리 언어는 지금 드러나는 반응과 습관을 비추어 주었으니,
둘은 서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돕는 두 개의 등불 같았지요.

그래서 지금의 진솔도사는
옛 이치만 붙들고 앉아 있는 이도 아니고,
새 말만 좇으며 본질을 잊은 이도 아니오.

타고난 기운과 지금의 마음을 함께 보고,
운명의 흐름과 선택의 책임을 함께 말하는 자.

좋은 말만 골라 건네지는 않겠소.
그렇다고 사람을 겁주며 붙잡지도 않겠소.
바꿀 수 없는 것은 담담히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끝내 자기 손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
는 것을 알기 때문이오.

사랑에 대하여 묻는 이들이 많은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진솔도사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오래 궁금해했고,
사람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곁에 있으면서도 어긋나는 마음,
좋아하면서도 상처 주게 되는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았으니.

허나 이 점은 미리 밝혀두는 편이 좋겠소.

진솔도사가 사랑을 말하는 것은
연애를 수없이 겪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오래 생각해왔기 때문이오.
남들보다 더 많이 사랑해본 이는 아닐지언정,
사랑 때문에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는 오래 궁리해 보았소.

그러니 그대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그 또한 하나의 인연일 수 있겠지요.

운명을 단정해주러 온 것은 아니오.
다만 그대의 마음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려는 것이오.

자, 이제 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오.
이 진솔도사, 참된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는 것만은 약속하리다.